
'은마'가 움직이자 대치동이 깨어났다 재건축 훈풍에 강남이 들썩인다
사업시행계획 인가로 23년 숙원 풀어낸 은마아파트 미도 우성 쌍용까지 재건축 속도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재건축 지형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대치동의 상징인 은마아파트가 사업시행계획 인가를 받으며 재건축의 중대 분기점을 통과하자 인근 단지들까지 기대감이 확산되고 있다. 수십 년간 정체됐던 사업들이 연쇄적으로 속도를 내면서 대치동 전역이 거대한 재건축 무대로 변하는 분위기다.
지난 6일 찾은 서울지하철 3호선 대치역. 역사 곳곳의 벤치에는 '한보그룹'이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은마아파트와 미도아파트를 건설했던 기업의 흔적이다. 세월은 흘렀지만 대치동을 대표하는 대단지들은 또 한 번 도시의 역사를 새로 쓰기 위한 출발선에 서 있었다.
은마아파트 정문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사업시행계획 인가 완료'를 알리는 대형 현수막이었다. 1979년 입주한 은마아파트는 2003년 재건축 추진위원회 승인을 받은 이후 23년 만에 사업의 핵심 관문을 넘어섰다. 주민들의 오랜 기다림이 비로소 현실로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조합은 사업시행계획 인가를 마친 데 이어 관리처분계획 인가 절차에 본격 착수했다고 밝혔다. 종전자산 평가와 분양 신청 등 후속 절차도 상당 부분 사전 준비를 마쳤으며, 이주 일정 역시 최대한 앞당기겠다는 방침이다.
단지 안 풍경은 재건축 기대감과는 별개로 노후 단지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출근 시간이 지난 오전인데도 단지 곳곳은 차량으로 가득 찼다. 이중·삼중 주차는 일상이었고, 한 주민이 이중 주차된 차량을 밀자 지나가던 주민이 자연스럽게 힘을 보태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무분별한 이중·삼중 주차로 소방차 진입이 어렵고 주민들이 직접 차량을 밀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며 불법 주차를 강력히 단속하겠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그러나 높은 층에서 내려다본 단지는 안내문이 무색할 만큼 차량으로 빼곡했다.
은마아파트는 기존 4,424가구를 철거하고 5,850가구 규모의 대단지로 다시 태어날 예정이다. 오는 2028년 착공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공공임대 909가구와 공공분양 195가구를 제외하면 일반분양 물량은 322가구에 그친다. 업계에서 사실상 '1대1 재건축'으로 평가하는 이유다.
시공사 역시 큰 변화 없이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조합은 2002년 삼성물산과 GS건설 컨소시엄을 시공사로 선정했다. 컨소시엄 측은 조합원들의 시공사 교체 요구는 없으며 기존 계약에 따라 사업을 지속적으로 협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장 분위기는 이미 시장에도 반영되고 있었다.
은마아파트 인근 한 공인중개업소 대표는 "사업시행계획 인가 이후 매수 문의가 확실히 늘었다"며 "전용면적 84㎡ 매물이 36억5,000만원에 나왔는데 매도인이 곧바로 1억원을 올려 다시 내놓기로 했다"고 전했다. 이어 "같은 평형으로 이동할 경우 분담금은 약 3억원 수준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대치동이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신축 대단지가 사실상 희소하기 때문이다. 현재 입주 10년 이하 단지는 디에이치대치에델루이, 대치푸르지오써밋, 대치르엘, 대치SK뷰 정도에 불과하다. 은마 규모의 대단지는 양재천 건너 개포동의 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와 개포자이프레지던스 정도가 유일하다.
은마의 진전은 주변 단지에도 즉각적인 파장을 일으켰다.
대치우성아파트 사거리에는 "김현기 강남구청장님, 우리 아파트도 빨리 재건축해주세요"라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강남구 주민 명의로 게시된 이 현수막은 재건축을 기다리는 주민들의 기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김현기 강남구청장은 지난 2일 은마아파트를 직접 방문해 사업시행계획 인가서를 전달하며 사업 추진 상황을 점검한 바 있다.
남부순환로 건너편의 대치미도1차 2차 아파트 역시 재건축 열기가 뜨겁다. 삼성물산, 현대건설, 대우건설, DL이앤씨, GS건설, 포스코이앤씨, 롯데건설 등 국내 주요 건설사들이 일제히 현수막을 내걸고 시공권 확보 경쟁에 뛰어들었다.
각 건설사는 래미안, 디에이치, 써밋, 아크로, 자이, 오티에르, 르엘 등 최고급 브랜드를 앞세워 주민들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민총회 개최를 축하하는 현수막 역시 경쟁적으로 내걸리며 대치동 재건축 시장의 높은 관심을 실감하게 했다.
1983년 준공된 미도1차2차는 재건축을 통해 4,670가구 규모의 대단지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추진위원회는 오는 10일 설계사와 정비업체 합동설명회를 개최한 뒤 18일 두 번째 주민총회를 열어 사업 추진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미도는 신속통합기획 대상이라 사업 추진 여건이 좋다"며 "연말 조합 설립이 완료되면 속도가 더욱 빨라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어 "이 일대에서는 쌍용이 먼저 진행되고 은마와 미도가 비슷한 시기에 본궤도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반면 미도와 함께 '우선미'로 불리는 개포우성1·2차와 선경1차2차는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였다. 선경아파트에는 조합설립 추진위원회 구성 동의서 접수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고 주민 동의 절차가 진행되고 있었다.
은마아파트 맞은편 영동대로를 사이에 둔 대치우성1차와 대치쌍용1차·2차는 이미 은마보다 앞서 사업시행계획 인가를 받은 상태다.
삼성물산을 시공사로 선정한 쌍용1차는 '래미안 르네아르 대치'로 새롭게 태어날 예정이다. 우성1차와 쌍용2차는 통합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으며 실제 현장을 걸어보면 세 단지가 하나의 생활권처럼 자연스럽게 연결돼 있다.
인근 공인중개사는 "다음 달 쌍용2차 조합을 해산하고 우성1차 조합으로 통합하는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라며 "기존 현대건설 시공사 선정도 조합 통합 이후에는 다시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직 시공사 경쟁은 본격화되지 않았고 현재는 건설사들이 홍보 활동을 이어가는 단계"라고 말했다.
23년을 기다린 은마의 한 걸음은 단지 하나의 변화에 그치지 않고 있다. 은마가 움직이자 미도가 속도를 내고, 우성과 쌍용도 뒤따르고 있다. 서울 부동산 시장의 상징으로 불리는 대치동은 이제 노후 주거지를 넘어 강남 재건축의 새로운 중심축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문의 : 031-563-2114












